/강소원 영화평론가

예술은 현실 정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야 비로소 온전히 제 역할을 하는, 완전한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혹은 길들일 수 없는) 영혼이며 삐딱하고 자족적이며 무용한 삶의 여분이다. 있으면 삶이 좀더 풍부해지겠지만 없어도 먹고사는 데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그 쓸모없음이 예술을 예술일 수 있게 하는 전제조건이다. 그래서일까, 예술이 처한 고난에 우리가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이유는.

예술에 그 어떤 규제도 개입되어서 좋을 게 없다는 게 내 생각이지만 영화의 경우 그 자본의 무자비한 속성 때문에 최소한의 법률적 규제가 요구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배급문제가 그렇다. 최근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한국 스크린을 점령하고 연일 놀라운 흥행 스코어를 올리는 과정을 보라. 전국 스크린 수 2천281개 중 한 편의 영화가 1천843개를 차지하는 게 과연 정상적인 일인가? 스크린 비율로는 80%지만 객석 수로 따지면 90%를 훌쩍 넘는다. 이쯤 되면 우리가 영화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영화가 우리를 선택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하다.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곳은 바로 여기다.

정부, 부산국제영화제 흔들기
사직 권유·6개월간 고강도 감사
예산 대폭 삭감 최악 시나리오 진행
우리에겐 ‘지켜 낼’ 책무가 있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개입하지 말아야 할 곳에 개입하느라 바빠서 이렇게 중대하고 시급한 문제에 관심을 돌릴 여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 엉뚱한 타깃은 부산국제영화제다. 지난해 말, 상영작과 관련한 의견 충돌로 시작된 부산시와 영화제 간의 갈등이 올해 초 부산시의 영화제 집행위원장에 대한 사직 권유로 표면화되더니 6개월에 걸친 시와 정부의 강도 높은 감사를 거쳐서 지금 영화진흥위원회의 대대적인 영화제 지원 예산 삭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최악의 시나리오가 재현되고 있는 중이다.

유사 이래 영화는 그 막강한 대중적 잠재력 때문에, 당대 사회와 긴장을 유지하려는 속성 때문에 자주 정치적 격전의 장에 놓이곤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지난 세기의 일이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가 믿기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무튼 영진위는 지난해 지원금의 45%를 삭감하면서 “글로벌 영화제로서의 위상을 점유한 부산영화제의 자생력 강화”를 기대(?)하였다. 자생력을 키우라고? 그 방법도 알려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만약 그 비법 같은 게 있다면, 칸, 베니스, 베를린 등의 세계 유수 국제영화제는 글로벌 영화제로서의 위상이 낮아서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 채 부산영화제보다 몇 곱절 되는 비율의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는가. 이런 의문이 풀리지 않는 건 영진위가 내놓은 지원금 삭감의 사유가 실은 궤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동네 구멍가게 하나를 꾸려가는 데에도 한 해 예산 계획이란 게 있는 법인데, 올해 영화제 개막까지 이제 6개월 남짓 남은 이 시점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이란 딱히 없어 보인다. 부산영화제보다 무려 10배나 많은 예산을 확보한 상하이국제영화제는 그 대부분을 정부의 지원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들었다. 부산영화제가 더 긴 역사의 동경영화제를 어느새 앞질렀듯이, 지금 중국은 아시아권의 최고라는 부산영화제의 위상을 공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20주년을 맞는다. 부산 시민으로서, 그리고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산영화제가 우리 가슴에 피워 올린 작은 불꽃은, 돌이켜보면 거의 기적 같은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이제껏 부산영화제에서 만난 영화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과 다른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산영화제가 없는 부산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

만약 지금의 사태가 부산영화제를 권력에 길들이려는 의도에서 나온 일들이라면, 부산시는 ‘영화도시 부산’은 물론 ‘유네스코 영화창의도시’ ‘아시아영화의 허브’라는 이름부터 반납하는 게 우선일 것 같다. 그 사이 서울이 발 빠르게 그 자리를 예약해 놓은 모양이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노릇이다. 물론 이 정권이 바뀌어도 부산영화제는 계속되겠지만 지금 사태가 끼친 막대한 문화적 폐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돌아갈 길은 없다. 올해 스무 살의 부산국제영화제가 제 뜻을 펼쳐 다음 시대의 비전을 우리 앞에 제시할 그 축제의 광경을 떠올리자면, 단 한걸음도 물러설 수가 없는 것이다.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에겐 책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