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BIFF)를 향한 외압이 그치지 않고 있다. 외압의 양상은 물론 외압을 가하는 주체도 다양하다. 지난 영화제 기간에는 부산시장이 영화제 초청작 상영 철회를 요구하더니, 올해 초엔 부산시가 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용히 물밑에서 영화제를 압박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지난 영화제 종료 직후부터 최근까지 거의 6개월에 걸쳐 부산시와 감사원이 잇달아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감사를 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을 대폭 삭감했다.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지난달 진행된 영화진흥위원회의 ‘글로벌 국제영화제 육성 지원 사업’ 심사 과정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이 지난해보다 45%가량 삭감됐다. 금액만 놓고 보면, 14억5000만 원에서 8억 원으로 전년보다 6억5000만 원이 줄었다. 정부 지원을 받게 된 6개 영화제 가운데 지원금이 삭감된 곳은 부산국제영화제뿐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국제영화제로 도약하려는 영화제들을 중심으로 지원하는 것이 이 사업의 취지”이며, “부산영화제는 이미 명실공히 글로벌 영화제로 위상을 점유하고 있어 자생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다수 의견에 의해 부분 감액”한다는 것이다. 자생력 강화라는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이번 심사 결과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선 현실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정도의 규모를 가진 영화제 중에서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영화제는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칸영화제나 베를린영화제 등도 예산의 상당 부분을 정부지원금에 의존하고 있다. 심지어 민간 영역이라는 이유로 영화산업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꺼리는 일본의 동경영화제도 국비지원금 비중이 50%에 이른다.

예산 삭감 시점도 문제다. 올해 영화제 개막이 불과 6개월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요구하는 대로 정부지원금 비중을 줄이고 자생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대폭 인상하거나 후원업체를 늘려야 하는데, 이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입장료를 인상할 경우 관객 부담이 커질 것이며, 후원업체를 대폭 늘릴 경우 영화제가 지나치게 상업화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시민이나 비영리단체의 후원을 받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장기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해야 할 일이다.

​영화제 평가도 납득하기 어렵다. 나름 알차게 운영되는 영화제도 있지만, 관객과 영화인의 만족도 면에서 부산국제영화제와 겨룰 영화제는 없다. 그런데 여러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부산국제영화제만 유독 예산이 삭감됐다는 사실은 심사의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의 근본적인 문제는 영화제를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주체들이 도리어 영화제를 흔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영화의 상영 철회를 요구함으로써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을 추락시킨 부산시장은 영화제를 이끄는 조직위원장이기도 하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무능하고 무책임한 집단인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영화제 구성원들은 물론 부산 시민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남긴 주체는 다름 아닌 부산시다. 또한, 영화제 개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예산을 대폭 삭감해버린 주체는 우리나라 영화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영화진흥위원회다.

​공교롭게도 지난 1년 사이 부산시장, 영화진흥위원장, 부산시청 공무원들이 모두 새 인물로 바뀌었다. 애초에 그들에게 기대한 것은 좁게는 부산영화, 넓게는 한국영화를 재도약시킬 수 있는 비전과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들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그나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던 부산국제영화제를 위기로 몰아넣었을 뿐이다. 물론 지금 언급된 이들 모두는 자신이 부산국제영화제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했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다른 영화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사건들이 유독 부산국제영화제에서만 단기간에 반복해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올해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제 구성원은 물론 한국의 영화인, 더 나아가 부산 시민 모두가 자축해도 좋을 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정상적이었다면 여느 때보다 성대하고 알찬 축제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영화제가 가장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유감스럽다.

동의대 영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