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님 추모 글 >
김지석 선배님을 떠나보내며..
  2017년 5월 19일 아침, 부산국제영화제의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 프로그래머가 칸영화제에 참석했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가 전해졌다.
이 간단한 문장이 무얼 의미하는지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들었다. 망연자실한 채 그 부고를 되뇌이자 비통한 감정과 함께 두서 없는 기억들이 덮쳐온다.
부산의 후배영화인으로서 우리는 그의 너무 이른 죽음에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으로 여기 추모의 말 한 두 마디를 보태려 한다.
평소에 우리는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마음으로는 선배라고 여겼다.
부산국제영화제가 탄생하기 이전에 그는 ‘시네클럽’ 등 지역 영화단체를 이끄는 영화인 선배로, 영화과 시간강사로, 영화비평지 『영화언어』의 신진 평론가로 활동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부산의 1세대 영화인이었던 그는 우리 모두의 선배이자 선생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그는 무척 가난하고 내세울 것 없는 이였지만 꿈만은 원대했다. 만날 때마다 부산에 국제영화제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자비를 들여
국제영화제를 다니는 그를 당시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김지석 선배가 가진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김지석의 비전이 곧 부산국제영화제의 비전이었고, 또 부산국제영화제의 DNA는 온전히 김지석의 것이었다. 그 사이 우리는 잘 나가는 형에게
떼쓰는 못난 동생처럼 굴기도 하고 종종 삐치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좋은 모습으로 만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부산영화제가 어려움을 겪는 중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서로에 대한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그간의 감정은 뒤로 밀어둔 채 앞으로 함께 가야할 길을 이야기했다. 지역 영화인 선후배로서 우리의 우정의 연대기가 이제 시작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오늘의 비보가 더욱 안타깝고 비통하다.
 이 자리에서 한국의 영화문화에 끼친 그의 영향력과 공헌을 굳이 나열할 필요가 있을까. 모두가 그 공헌을 알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말할 것이고,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니
우리는 지역의 영화인 선배로서 그와의 사사로운 우정과 굳건한 연대를 말해도 이해해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회한이 앞선다. 해외영화제 출장이 아니면
영화제 사무국에 가장 일찍 나와서 가장 늦게까지 자리를 지킨 까닭에 그는 가장 만나기 쉬운 사람이기도 했지만 우리를 그를 찾지 않았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그의 빈자리다.
그 자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술 한모금도 못하지만 술자리는 빠지지 않았던 선배, 언제나 성실하고 매사 진지했던 선배, 오직 영화밖에 몰랐던 선배, 영화제 걱정으로 자기 자신은 잊고 살았던 선배.
자주 흥청망청하고 때때로 거칠었던 우리는 그 앞에서 생이 영원할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여기 없다. 우리는 너무 이르게 그를 떠나보냈다.
아마도 그는 칸에서의 마지막 순간에도 올해 부산영화제를 걱정했을 것이고, 봐야 하는데 보지 못한 영화들에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저 곳에서 앞서 간 아시아영화감독들이 그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광경을 문득 떠올린다.
지난해 타계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그를 부둥켜안는 광경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가 남긴 영화적 유산은 거대하지만 아마도 그가 남긴 빈자리는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빈자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커질지도 모른다. 그의 평안한 영면을 바라면서도 지금 당장은 돌아서 가는 그의 발목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벌써 그가 그립다.
김지석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하 김지석 선배님의 추모글은 부산독립영화협회를 대표하여 협회 이사님이신 강소원 영화평론가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 *